지난 7일 재외동포재단에서 주관하는 제22회 재외동포문학상에서 ‘한글학교 특별상’에 비엔나 한글학교가, ‘글짓기 중고등 부문 우수상’에 김다윤 학생이 선정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재외동포문학상은 시 · 단편소설 · 체험수기 · 글짓기(초등/중고등) · 입양수기 등 6개 부문별 34편의 작품을 선정하여 수상하는데, 전 서계의 750만 재외동포에게 한글문학 창작활동을 장려하고 재외동포 청소년들에게 모국어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내국민의 재외동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1999년부터 매년 개최되어 왔다.
재외동포재단은, “올해에는 59개국에서 1,329편의 작품이 접수되어, 국내 문단의 문인들과 학계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수상작을 선정했다”고 전했다.
수상자와 한글학교에는 상패 및 상금이 수여되며, 시상은 수상자 거주국 관할공관에서 치뤄질 예정이다.
아래는 글짓기 중고등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김다윤 학생의 작품 “꿈꾸는 디아스포라” 전문이다.
꿈꾸는 디아스포라
여러분은 디아스포라 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는 그리스 어로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뜻하는 말로서 특정 민족들이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지만 유럽에 살고 있는 저와 저의 가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이 디아스포라! 흩어짐으로 시작되는 위대한 이야기를 통해 저의 또 하나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혹시 “금주가” 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 노래는 1931년 일제 강점기, 당시 술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교육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 한국 교회 예배 시간에 불리워진 계몽 찬송가라고 합니다. 이 곡을 작사, 작곡 하신 분이 바로 저희 외 증조 할머니 임, 배자, 세자 할머니 이십니다.
제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아버지를 통해서였습니다. 아버지는 비엔나 오페라 극장에서 노래하시는 성악가이신데 할머니의 숭고한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이 찬송가를 녹음해야 한다고 하시며 연습을 하셨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어떤 일을 하셨고 이것을 왜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셔서 Korean-American, 디아스포라로 대한민국을 위해 사신 꿈의 사람이셨습니다. 할머니는 동포들의 계몽 운동뿐 아니라, 특별히 시카고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며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님께 독립 자금을 보내시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2세로 태어나 한글학교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님이 미국에 계셨던 할머니의 도움을 받으셨다고 하니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할머니께서 그저 고국을 떠나 자신을 위해 이름있는 음악가로 또… 카페를 잘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표로 두셨다면 아마도 할머니는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진정한 가치! 꿈은!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나라를 잃어버린 아픔을 씻어내고, 일본의 압제로부터 다시 독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물질을 나누는 삶을 사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인 디아스포라” 라는 단어는 제가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의 할머니와 2000년대의 제가 디아스포라라는 공통점을 통해서 역사 속에서 만났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대한민국의 역사를 피부로 느끼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라는 말은 제게 하나의 가치! 특별함이 되었습니다. 왜 제가 유럽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지… 저들과 다른 특별함으로 대한민국과 오스트리아, 유럽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Korean-Austrian, 디아스포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놀랍게도 세계 각국에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강점이 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통해 전 세계의 가족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신 할머니 업적을 조사하고 자료를 모았습니다. 개인을 위해 사셨다면 역사 속에 할머니의 이름은 그냥 “교포” 였을 텐데 한인 사회와 나라를 위해 헌신 하셨기에 그 수고는 역사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올해 초 국가에서 독립 운동을 하신 여성으로 포상을 받는 영광스러운 일도 생겼습니다.
할머니에 이어 우리 가족들이 보여준 디아스포라의 모습이 저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각자 작은 부분들에 수고했지만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중학교 교과서에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약간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비중은 안타깝게도 북한과 김정은의 이야기였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보는 대한민국은 이 정도구나…!” 라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끓어올랐습니다. 저는 할머니와 우리 가족들처럼 나에게 주어진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은 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려 이 교과서에서 얘기하는 단편적인 한국 이 아니라 다이나믹한 열정의 나라, 대한민국을 소개했습니다.
할머니를 통해… 주위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할머니를 알았던 것처럼 제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저를 통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북한과 김정은 만 있는 나라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렇게 글을 써서 할머니와 가족들로 인해 변한 저의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것도 디아스포라 다음 세대로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글학교를 12년 동안 성실하게 다닌 것은 저에게는 자랑이 입니다. 비록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은 오스트리아 이지만, 한인 사회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학교를 다니고 다양한 행사를 경험하며 한국 사람으로 배우고 알아야 할 소중한 가치를 보물로 가진 오스트리아 한인 2 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한민국과 오스트리아 두 문화를 강점으로 가진 한인 디아스포라입니다. 이제 세계 속에서 더 넓은 시야로 역사를 배우고 경험하는 정체성이 분명한 한인 디아스포라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저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할머니처럼 나라와 이웃을 위해 재능을 나누고, 물질도 나누는 꿈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가게 될 것을 기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글 박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