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츠의 주립극장, 그곳에서 뮤지컬 지휘자로 활동하는 한인 음악가가 있다고 인터뷰를 추천 받았다. 린츠 주립극장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극장으로써 다른 유럽의 극장과는 차별화된 전략과 예술에 대한 무한한 투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부터 린츠 주립극장 뮤지컬 부문의 지휘봉을 잡은 한주헌 지휘자는, 지휘자이기 이전 작곡가로서 영화 음악과 드라마 음악에까지 두루 섭렵하고, 나아가 모든 음악세계의 영역을 아우르고자 한다고 전했다. 폭넓은 활동 분야와 현지에서 각광받는 한인 음악가임에 인터뷰를 할 기대에 부풀었으나, 애석하게도 현재의 시국으로 인해 직접 만나지 못하고 메일과 통화를 주고받으며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Landestheater Linz | 린츠 주립극장

 

Q. 안녕하십니까?! 한주헌 지휘자님. 반갑습니다!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린츠 주립극장에서 2019년 9월부터 뮤지컬 지휘를 맡고 있는 한주헌이라고 합니다.

 

Q. 어떤 계기로 음악이란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되셨는지요?

어렸을 적 TV에 나온 어느 남자 피아니스트의 연주하는 모습에 반해서 무작정 부모님께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 남자가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는 것이 친구들에게 부끄러워, 태권도 학원 가방에 피아노 책을 넣어 다녔습니다.) 이후 피아노 전공으로 예중, 예고에 진학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배우던 중,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TV드라마의 배경 음악에 사로 잡혀 단번에 꿈을 피아니스트에서 영화음악 작곡가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음악 작곡가로 일하던 중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유학을 결심하게 된 후 지금은 린츠 주립극장에서 뮤지컬 지휘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지휘자이시기 이전에 작곡가로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들의 제작에 함께 참여하셨는지요?

우선 저는 2000년도에 영화 순애보(이정재 주연)를 통하여 영화음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이후 싱글즈, 말죽거리 잔혹사, 효자동 이발사, 마파도, 외출, 인어공주, 강아지와 나의 10가지 약속(일본), 신기전 등 약 40여편의 장·단편 영화음악과 뮤지컬 대장금, TV 드라마 음악 작곡에 참여하였습니다. 2000년대 한국 영화는 양적, 질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1세대 한류 열풍으로 많은 영화들이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수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일본에는 첫 한류 열풍으로 배용준 배우의 인기가 상당하였는데. 제가 작곡에 참여했던 외출이란 영화에 배용준 배우가 주연을 맡게 되었고, 덕분에 저희 작곡팀은 일본 도쿄, 나고야 오사카, 사이타마에서 성공적으로 영화음악 콘서트 투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공연 당시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보고 매력을 느끼게 되어, 한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독일 오케스트라 지휘 유학을 마음먹게 되었구요. 그러니까 저의 지휘자로서의 꿈은 영화 ‘외출’ 덕분인 셈입니다.

보통 영화 음악을 작곡할 때, 음악이 들어가야 할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보게 됩니다. 음악이 들어가는 타이밍이나 미묘한 배우의 감정의 변화와 음악의 템포가 정확히 맞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영화의 대사가 저절로 외워질 정도였어요. 제가 일본어를 따로 공부한 적이 없는데, 일본영화 음악을 작업한 적이 있어 일본어 대사도 외웠었답니다.

한주헌 지휘자가 작곡에 참여한 영화 ‘형사’의 포스터

 

Q. 이후 독일에서 학업을 마치시고 활동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느 지역에서 어떠한 이력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2009년 Mannheim 국립 음대의 오케스트라 지휘과에 입학하여 2013년 8월 졸업을 하고, Sachsen주에 위치한 Freiberg 시립 오페라 극장에서 Korrepetitor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 1.Kapellmeister 자리 오디션이 있었는데, 합격하여 2014년 8월부터 2019년 7월까지 1.Kapellmeister로 30여편의 오페라, 오페레타, 뮤지컬 과 Symphoniekonzert 지휘를 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외에도 2018년부터는 이탈리아의 Arco라는 지역에 매년 부활절주간에 열리는 Pasqua Musicale Arcense 페스티벌의 지휘자로 초청받아 참여하고 있구요.

작곡가로서는 2018년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유태인 학살 80주년 추모 공연에 초청받아 ‘Letzte Tage Lodz‘라는 음악극을 작곡하여 발표·연주하기도 했었습니다.

 

Q. 오스트리아로는 어떤 계기로 오시게 되었나요? 오스트리아의 여러 도시와 무대 중 린츠주립극장을 택하시게 된 데에는 어떠한 인연이 있었는지요?

독일의 많은 오페라 극장에서는 젊은 관객층을 고려하여 한 시즌에 1~2개의 뮤지컬 작품을 공연하며 점점 뮤지컬 관객이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이렇듯 뮤지컬은 영국의 West End나 미국의 Broadway뿐 아니라 이제 유럽의 공연계에서도 점차 비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8년 린츠 주립극장의 뮤지컬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독일의 많은 오페라 극장에서 하는 뮤지컬 공연과는 달리 린츠에서 본 뮤지컬은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독일에서는 뮤지컬 공연시에, 1~2명의 주연 뮤지컬 가수만을 객원으로, 나머지 배역을 극장 상주 오페라가수로 구성하여, 오페라가수와 뮤지컬가수의 발성과 기교의 차이로 음악적인 아쉬움이 많이 남는 반면, 린츠 주립극장은 11명의 상주 뮤지컬 가수를 데리고 있고 린츠의 자부심인 부르크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기에 높은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린츠 주립극장은 뮤지컬 부분을 독립시켜 특화시킨 유럽의 유일한 오페라 극장이더라고요. 마침 뮤지컬 지휘자 채용공고가 나서 지원하였고, 2019년 9월부터 일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에 완공되었다는 넓은 무대와 최첨단 시설을 가진 극장 건물에 반한 것도 제가 린츠에 오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겁니다.(웃음)

 

Q. 현재 계신 린츠 주립극장과 맡으신 분야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린츠 주립극장에서 한 시즌에 5~6개의 뮤지컬 작품을 지휘하고 있고, 뮤지컬 가수들의 음악적 훈련 또한 책임지고 있습니다. 뮤지컬은 오페라와 달리 형식이 자유로워서 공연 상황, 연출방식에 따라 많은 편곡이 필요하여 편곡도 아울러 겸하고 있습니다. 요즘같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 앤드도 공연장을 열지 못하는 코로나 시대에 린츠 극장은 방역수칙을 엄수하며 활발하게 공연을 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서 전해 듣기로는, 지휘자님께서 이미 뮤지컬 ‘Piaf’, ‘Die spinnen, die Römer’ 등을 관객들에 선보이셨다 들었습니다. 작업하셨던 작품이나 준비 중인 무대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난 2019년 8월부터 린츠에서 뮤지컬 ‘씨스터 액트’(sister Act)로 일을 시작하였고, 11월 유럽 초연 창작 뮤지컬 ‘Mary and Max’ 피아노 Version을 오케스트라 Version으로 직접 편곡하여 무대에 올렸습니다. 1월에는 Stephen Sondheim의 ‘A Funny Thing Happened on the Way to the Forum’의 독일어 버전 ‘Die Spinnen, die Römer’를 지휘하였고요. 그러다 지난 3월, 다음 작품 리허설 중 코로나로 리허설과 공연이 중단 되었었죠. 이번 시즌에는 지난 9월,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뜨 피아프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Piaf’를 시작으로, The Wave, Songs for the new World, Priscilla – Königin der Wüste 등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지난 7월 뮤지컬 Piaf의 무대인사 중

이 중 세계 초연으로 공연될 The Wave는, 1967년 미국 고등학교에서 실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Ron Jones라는 역사 선생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시민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고 빠르게 나치에 동조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려고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진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는 생소한 스토리였지만, 유럽에서는 이 이야기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일본과는 다르게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스스로를 비판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그러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진지하게 교육하는 독일·오스트리아인들의 인식에 많이 놀랐으며, 그래서 저 또한 이 작품에 더욱 애착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린츠 주립 극장 소속 뮤지컬 가수들과 빈의 Musik und Kunst Privatuniversität der Stadt Wien의 뮤지컬 전공 학생들이 collaboration하는 공연이기도 합니다. 11월 7일 린츠에서 세계 초연되는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Or Mathias가 작곡을 맡았습니다.(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2차 Lockdown으로 인하여 12월로 연기되었고, 3차 봉쇄령으로 재차 내년 6월로 연기되었습니다.)

Piaf역을 맡은 배우 겸 가수 Daniela Dett와

 

Q. 앞으로 지휘자님께서 음악가로서 나아가고자 하시는 방향은 어떠한지 여쭙습니다.

저는 클래식, 뮤지컬, 오페라, 영화음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있어 음악가로서의 가장 큰 기쁨이자 목표는 관객과의 소통입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음악을 하고싶습니다. 저의 첫 독일 교수님께서 하셨던 “지휘자는 지휘봉에 마음(심장)을 걸어야 한다”는 말씀을 늘 새기고 있습니다.

작곡가로서의 가장 가까운 목표는 저의 뮤지컬을 직접 작곡하고 공연하는 것입니다. 다행이도 좋은 대본 작가를 알게 되어 현재 함께 작업 중이고요. 작년 여름 제가 편곡하여 린츠 극장에서 유럽 초연되어 졌던 뮤지컬 ‘Mary and Max’가 독일 Hildesheim 극장에서 연주되어질 거란 소식에 매우 기쁩니다.

부인 차승은 피아니스트와 함께

 

Q. 끝으로 한인 여러분께 전하고픈 말씀이 있으실련지요?

지금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각자 계신 곳에서 건강 잘 지키시고, 모두가 안전하게 다시 공연장에서 감동을 나눌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11년을 지내고 오스트리아로 넘어오다 보니 언어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비슷한 듯하지만 또 많이 다르더라고요. 독일에서 활발한 ‘베를린 리포트’나 페이스북의 ‘독일 유학생 네트워크’ 같은 커뮤니티가 오스트리아에서도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대사관과 한인회에서 매일 보내주시는 코로나 소식도 너무 감사히 받아보고 있습니다.

 

글 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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