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고문 칼럼] 비엔나의 큰 별 하늘나라로 자리를 옮기다 – 정창식 박사 추모 칼럼

<편집고문 칼럼>

프란치스코 정창식 박사의 영전에 드리는 추모의 글

2020년 오스트리아 한인원로회 정기회 마치고 / 김운하 편집고문(좌), 정창식 초대 한인원로회장(우)

비엔나 하늘을 환히 밝히던 한 큰 별이 자리를 옮겼다. 하나님 나라의 빛나는 큰 별로. 아니, 그 밝은 빛의 광채는 오스트리아 한인들의 마음 속에서도 길이 빛날 것이다.

나는 어제 장례미사 성당이라고 하는 그린칭 카스그라벤 성당에서 환하게 미소 짖고 있는 프란치스코 정창식 박사의 영정을 대할 때 그만 가슴이 터질 듯이 울컥하였다. 이 땅 옛 사람들의 정으로서는 마음이 격동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돌아오면, 애통하고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들의 육체는 자연과 세월의 법칙에 따라 죽음을 피할 자가 그 누구도 없다는 세상의 언어에 오랫동안 강박당해 온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죽음은 우리 육체의 변환의 한 모습일 뿐이다. 우리들의 육체가 완전한 영혼으로 변환하여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희열, 성화(聖化)의 변환을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영원한 삶을 말한다. 이 진리는 이 땅에서는 믿음으로 우리들을 하나님의 언로로 인도하며, 하늘나라에서는 일상적인 현실이 되는 진리이다.

나는 어제의 미사를 ‘장례(葬禮) 미사’라는 이 땅의 옛 언어로 부르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 입성 축하 미사’라는 하나님 나라의 새 언어로 부르고 싶다.

비엔나 한인 천주교회 성가대가 어제 정창식 박사의 영혼을 위한 미사에서 찬양한 ‘나는 부활이요, 생명 이니라’는 위령 찬송과 ‘생명의 성체여’라는 찬송에서 우리가 ‘영성체’(領聖體)로 변환함을 찬송한 것은, 참으로 하나님 나라 언어 정신에 맞는 찬양이었다고 생각한다.

고 정창식 박사 영정
고 정창식박사 영결미사 제단 전경

프란치스코 정창식 박사는 그 이름이 너무나 그리운 사람이다!

내가 정 박사와 인연을 맺기로는 미국 생활에서 은퇴를 하고 오스트리아로 이주한 2005년 이후부터이다. 20년 전 당시에도 정창식 박사는 오스트리아 한인동포사회의 으뜸가는 지도자였다. 비엔나 하늘을 빛나게 하고 있는 큰 별이었다.

나의 정창식 박사에 대한 첫 인상은, 보은(報恩)의 인술을 행하는 의사의 신분으로서도 고귀한 것이었지만, 그기에 더하여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철학자, 교육자 같은 언행의 모습이었다. 정 박사는 그의 영세명 ‘프란치스코’ 이름과 같이, 이태리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인, 무소유, 겸손, 사랑, 순종의 덕목을 훌륭하게 연마한 분이었다.

정창식 박사는 5년이 앞서는 선배였기로 항상 존경하면서 배우는 후배로서 지내 왔다. 나와의 사이에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일은 오스트리아 한인원로회를 둘이서 함께 발기한 것이다.

2014년 제안한 것을 함께 가꾸어 오다가 2016년 발기인회를 확장하여 창립을 성사시켰다. 한인원로회는 한인동포사회에 한민족의 훌륭한 가족 윤리도덕인 어버이 효도사상을 전승하여 한인동포들의 정체성의 하나로 삼자는 정창식 박사님의 기본 정신 위에. 원로 정신을 한인사회 지도이념의 하나로 융합하자는 취지에서 창립된 것이다. 정 박사가 초대회장이 되고, 내가 3대 회장을 지내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정창식 박사는 젊은 시절부터 지도자로서의 덕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 6.25전쟁을 맞이하여 용감하게 호국전선으로 나아갔다. 1950년 9월 입대, 1953년 6월 1일 까지 군복무의무를 수행하였다.

경북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석사학위까지 삶의 철리를 깨우치고 1년간 고등학교 교사로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수직을 연수하였다. 1960년 마침 찾아 온 오스트리아 유학의 대망을 안고 부산에서 화물선을 타고 고국을 떠났다. 이태리 나폴리 항구에서 유럽에 첫 발을 딛고, 기차로 비엔나로 왔다고 회고하였다.

처음에는 석사까지 한 철학을 박사까지 속성으로 완료하여 철학교수로 활동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당시 정창식 유학생은 오스트리아 여성가톨릭협회가 마련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왔다. 이 여성가톨릭협회는 1주일에 한 끼 식 금식을 하여 장학금을 만들어 100명 한국학생들을 돕고 있었다.

정창식 유학생은 먼저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다. 여성가톨릭협회 회원들의 정성에 보답하여, 여성들의 임신과 해산, 산후 회복 등 고통을 치유하고, 산모의 복지증진을 위하는 보은의 의사부터 먼저 되자고 결심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처음에 왜 철학도가 갑자기 산부인과 의사를 택하는 가고 많은 의문을 가졌지만, 정창식 박사의 인품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곧 이해하게 되었다.

비엔나 국립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1969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정창식 박사는 비엔나 대학병원과 비엔나 근교 미스텔바흐(Mistelbach)의 바인피어텔(Weinviertel)클리닉에서 전문의 가정을 마쳤다, 과장대리로 일하다가 1980년 산부인과 병원을 개업하였다.

1973년,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서혜숙 의학 박사와 결혼을 하였다. 슬하에 아들 토마스(thomas)와 딸 크리스티네(Christine)를 두었다. 정년퇴임 후 외손자 야닉(Yannik)과 외손녀 말루(Malu)의 재롱을 보며 은퇴 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그의 인술 정신과 봉사 정신은 은퇴 생활만을 즐기게 하지 않았다. 또 한인동포사회도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본격적인 조국 대한민국과 한인동포사회를 위한 봉사사업이 꽃펴나게 된다.

정창식 박사가 조국과 동포사회를 위하여 봉사한 상황은 방대하다. 그러나 짧게 소개한다면, 비에나 한글학교 초대 이사장, 오스트리아 한인회 회장, 빈 한인천주교회 사목회 회장, 한인과학기술자 협회 초대회장, 오스트리아 한인의사협회 창립 회장. 오스트리아 한인원로회 창립 회장 등이다.

정창식 박사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봉사했다.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2회나 봉사했다. 이러한 조국 봉사와 동포 봉사로 정창식 박사는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과 치하장을 받은 후 1995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 받았다.

정창식 박사와 우리는 마지막 7-8년 간 한인원로회에서 자주 만나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동포사회에 남기는 유언 같은 말씀을 축사로서, 또는 ‘재오한인’지에 글로 쓰서 보낸 수상문 등으로 많이 남기었다. 그중 몇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진리는 사랑이며 사랑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시라는 생각을 배웠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외국 생활에서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 나를 의지하고 지탱해준 것이 신앙과 믿음이기도 했지요.”

“힘들고 어려운 해외생활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은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힘입어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더 좋은 세상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신앙과 믿음! 나는 유학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도, 해외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한인들에게도,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눈과 마음을 키우고 넓혀나가기를, 또한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함으로써 용기와 힘을 가지고 더 좋은 세상을 창조해 나가기를, 마음을 다해 기도합니다.”

끝으로 나는 내가 취재하고 보도한 청장식 박사의 마지막 시 ‘부활’을 소개하고 싶어진다. 이 시는 2016년 경 제작된 것으로 정창식 박사는 노래로 작곡되어 불려 지기를 원했다. 마침 비엔나 한인천주교회 같은 교인이며, 성악가 겸 작곡가이기도 한 송시웅 씨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작곡 했다, 2019년 5월 비엔나 한인연합부활절 성가제에서 비엔나 한인천주교회 성가대의 발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이 시에서 정창식 박사의 고매한 신앙의 경지,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의 부활을 확신하고 하나님 나라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아름다운 신앙을 느끼게 된다.

그리운 정창식 박사님,

하나님 나라에 먼저 입성하신 것을 경하 드리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락을 마음껏 누리시옵소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 나라에서 반갑게 만나십시다. 정 박사님께서 애창하셨던 부활 찬송을 울려 드리옵니다.


부활

정창식 시

하늘이 열려 있고

거룩한 빛 가득한 부활의 언덕

사랑으로 다가 오시는 예수님

즐거운 나의 삶

아름답고 영원하리니

어찌 당신 위해 살겠다아니하리

생기 나고 힘나게 도와주소서

주님이 나를 부르실 때 대답할 수 있도록

깨어 있게 하소서

당신이 계시는 곳

희망찬 그 언덕으로 가고파

주님이 비추시는 밝은 세상 향하여

자비의 주 하나님

방황하는 죄인 어루만져 주소서

당신께로 가는 나를 사랑으로 비추소서

생기 나고 힘나게 도와 주소서

주님이 나를 부르실 때 대답할 수 있도록

깨어있게 하소서.

2019년 재 오스트리아 부활절 연합성가제에서 부활 시 찬양발표를 듣고 정창식박사와 서혜숙 박사 부부


글/사진: 김운하 편집고문
기사제공: 새로운 한국 오스트리아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