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수의대학교 자리로 국립음악대학이 이사하게 되면서 동물 실험실이 있던 곳에 나직한 2층 새 건물이 세워지고, 바로 그 옆 비엔나 3구 시내에서 소들이 산책하던 길은 정원으로 바뀌어 몇 그루의 나무들도 심겨졌다. 지금 나의 부엌 창 밖에 마주 서있는 저 나무는 나의 좋은 이웃이자 매일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봄이 오기 전에 짝을 맺으려는 이른 새벽 지빠귀의 잘 보이려는 독창, 어딘가에서의 응답, 여린 새 순, 작은 하얀 꽃잎, 계절이 바뀜에 잎은 무성해 지고 색 또한 짙어지고, 정갈 맞게 잘 차려입은 박새에게는 놀이터를 허용하니, 마침 3층에 사는 나는 집에서 편안히 앉아 눈 높이에서 그들의 세심한 동작을 관찰하며 즐길 수 있다. 추석 절기에 맞추어 수줍어하는 시골 새 아씨가 처음 화장을 해보듯 처음에는 끝만 연하게 시도하더니 어느새 자신이 생겼는지 화장의 폭과 색상을 넓힌다.
11월의 안개와 12월의 서리를 다 맞고 이 대지 위에서 맺었던 인연의 고리를,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희로애락을 다 훌훌 털어 내려놓고, 그 때에 맞추어 바람이 불면 낙엽의 난무 또한 장관이지만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모아 자기를 지탱해 주는 뿌리에 쏟는 것을 보면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권리에 대해 아직은 소홀한 우리 사회에게 “죽음에 대한 문화”를 논하도록 자극한다.
당신이 원하는 임종 장소는?
이 질문에 대한 응답 1위는 “익숙한 내 집에서 익숙한 사람 속에 둘려 쌓여 고통 없이 눈 감는 것”. 다르게 표현하면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코에 익은 체취를 맡으며 귀가 금방 감지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평안히 그리고 영원히 잠드는 것! 즉, 연세 드신 분이 소망하는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갔다가 깨어나지 않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74.9%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데,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병원에선 환자로써 어떠한 선택권 없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다가 죽음을 앞두고 필요한 신변 정리의 시간을 놓치고 어처구니 없이 죽음을 맞는 것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삶의 마지막 모습은?
산소 호흡기 아니면 인공 호흡기 착용, 우리 사람의 몸은 죽음이 가까워 짐에 따라 더 이상 자양분을 받아 들이지 않는데도 Infusion을 주고, 욕창 방지책으로 자동적으로 소변 Katheter를 꽂아 소변 봉지를 달아 두고…
회복하지 못하는 사망 단계에 들어선 환자에게 무의미한 생명의 연명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해치는 것은 혹시 아닌지를 자문하게 된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소모되는 비용은 또 얼마 일까?
아차피 피할 수 없는 죽음인 이상, 스스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임종문화, 차라리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권리에 대해 알아보자.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환자가 의사 표현이 가능할 때 미리 자기 연명의료와 완화의료에 관련한 자기 의지를 서면으로 밝혀 두는 것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작성: 인터넷 “Patientenverfügung”에서 서식을 받아 본인, 신뢰인, 본인의 의지, 예를 들면 “나에게 회생 불가능인 임종이 다가오면 심폐소생술이나 인공 호흡기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말라”라고 본인의 의지를 적고 가정의나 주치의의 소견을 첨부하여 변호사나 공증인 혹은 환자 중개인의 검증을 받는데 이 의향서의 유효 기간은 5 년이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에는 그 곁에서 제일 먼저 도와 주는 덕분으로, 이 세상 새 주인을 직접 낳아주는 엄마 보다 한 발 앞서 만나는 산파가 있고, 한 생명의 불꽃이 꺼지려 깜박거릴 때에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신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돌보며 슬픔의 기간을 잘 넘길 수 있도록 위안과 안락을 제공하며 영원한 고향 길을 배웅하는 완화 전문인이 있다.
글 유보나 완화전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