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 흐르는 “한강”의 언어들 – 빈 13구 VHS 힛칭, 한강 소설 30시간 마라톤 낭독회 성료

빈시 13구에 자리한 국민교육센터(Volkshochschule)

빈 호프비젠가세(Hofwiesengasse)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100m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2024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자랑스러운 얼굴을! 11월 15일 오전 10시부터 16일 오후 4시까지, 빈 13구 VHS 힛칭(Hietzing)을 찾은 오스트리아인들에게 한강은 ‘한국 문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인도자였다.

VHS 힛칭은 빈시 13구에 자리한 국민교육센터(Volkshochschule)로서 2014년부터 30시간 마라톤 낭독회를 10년째 열고 있다. 2016년부터는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책을 읽고 있는데, 올해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인들이 한국 문학을 접하는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건물 벽과 출입문, 복도에 줄지어 붙어 있는 한강 작가의 얼굴을 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들어선 공연장 무대 위에는 역시 커다란 포스터를 배경으로 낭독을 위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채소들이 소박하게 세팅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채식주의자>로 행사를 시작하기 때문인 듯했다.

오프닝을 맡은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 임진홍 원장은 미리 준비해 온 독일어 인사말을 통해 한국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고 황석영, 정보라, 정유정, 김영하, 조남주, 박상영 등 독일어권에 꾸준히 이름을 알리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 작가들을 언급하며 한강 작가가 쏘아 올린 한국 문학의 세계적 가능성을 알렸다.

첫 번째 낭독은 한국인 차예린 씨가 맡았다. 차분하면서도 유창한 독일어로 20분 동안 <채식주의자>의 첫머리를 낭독한 그는 “오스트리아인들이 한강의 소설들을 독일어로 읽는 뜻깊은 기회라 한국인으로서 꼭 동참하고 싶었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두 번째 낭독자로 나선 게하르트 루이스 씨는 우선 독일 문학적으로도 흐름이 좋은 번역이라고 칭찬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한강이라는 한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직접 책을 구해 읽었다는 그는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의 심리 묘사가 탁월했다고 평했다. 가부장제의 불합리한 권위와 폭력에 맞서지만 평정을 잃지 않는 주인공이 신기했다고. 한강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인해 한국 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접했다는 그의 얼굴은 책 속의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이는 문학 소년의 그것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작가가 아닌 아시아, 그것도 여성으로서 최초의 수상이라는 것이 더 대단합니다” 세 번째로 낭독을 맡은 아그네스 B. 슈라이터 씨의 말이다. 인간과 타인, 주종 관계 등 서로의 이상이 갈등과 충돌을 야기하는 삶을 채식주의라는 개념에 잘 버무려 넣은 놀라운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한국 소설을 처음 읽는다는 그는 낯선 문화의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오프닝을 맡은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 임진홍 원장
첫번째로 낭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차예린 씨
두 번째 낭독자로 나선 게하르트 루이스 씨
세 번째로 낭독을 맡은 아그네스 B. 슈라이터 씨
이 행사의 주최자인 VHS 힛칭의 대표 로버트 스트라이벨 박사

이 행사의 주최자인 VHS 힛칭의 대표 로버트 스트라이벨 박사는 “한강 작가의 작품은 문장 하나 하나가 평범해 보이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인간의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20분씩 릴레이로 낭독을 한 90명의 오스트리아인들은 한국 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가진 자발적인 참가자들임을 강조하며, 향후에도 한국 문학 관련 행사에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흰><그대의 차가운 손><희랍어 시간> 순서로 낭독된 이 행사는 한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역사적인 의의 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오스트리아에 ‘한국 문학’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어준 것은 물론 이를 계기로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관심을 갖게 하는 힘찬 마중물이 되어 줄 것으로 전망된다.

상기 행사는 유튜브 채널 Marathonlesung 2024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연극으로도 유럽 곳곳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의 배우 겸 연출가인 다리아 데플로리안(Daria Deflorian)에 의해 연극으로 제작된 <채식주의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탈리아 로마 초연에 이어, 11월 8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초연을 가졌다. 2025년 5월 9일에는 빈 아카데미 극장(Akademietheater | Lisztstraße 1, 1030 Wien)에서 독일어 초연을 갖게 된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여성의 내면과 자기 통제를 섬세하고 밀도 있게 그려낸 한강의 소설이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도 깊은 공감과 울림을 전하기를 기대한다.

기사제공: 새로운 한국 오스트리아 (정현선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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